높이 ‘60㎝’의 2층집 현관에 걸린 우산은 몽당연필 만하다. 이 집 식탁 위에 놓인 엄지손톱 크기의 접시엔 3㎜ 길이의 빵조각이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다. 얼핏 보면 소꿉장난 같은데, 바게트 주름까지 재현한 정교함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小人國) 같은 이런 집과 거리풍경 미니어처는 ‘돌 하우스(Doll House)’로 불린다. 축소 모형 잘 만들기로 유명한 일본 내에서도 ‘매스컴이 뽑은 일본 최고 장인(匠人)’의 영예를 누렸던 일본의 돌 하우스 작가 혼자와 도시오(本澤敏夫·59)씨가 한국에 왔다.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이 개최하는 ‘돌 하우스 워크숍’에서 한국인들에게 솜씨와 감각을 전수하기 위해서다.
22일 만난 혼자와씨는 “내 작품 속 5㎜ 높이의 우유 컵에 빨간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는 게 보이느냐”며 “이 집에 여자가 살고 있다는 힌트”라며 빙긋 웃었다. 깨알보다도 작은 점만한 ‘립스틱 자국’은 여자 입술 모양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는 원래 축소모형이 아니라 실제 크기의 세트를 꾸미는 무대 미술가였다. 80년대 중반 일본의 대형극단 ‘시키(四季)’에서 모던발레 무대를 전담했다. “공연 무대를 만들려면 실제 제작에 앞서 미니어처를 만들어 검토합니다. 손재주가 좀 있는 저는 미니어처도 직접 만들었는데, 글쎄 축소모형 무대 만드는 게 실제 크기 세트 만드는 것보다 재미가 있었어요.”
"누구 집인지 상상하도록 인형없는 빈집 만들어"
▲ "소인국을 창조한 조물주 같나요?" 축소모형의 장인인 혼자와 도시오씨가 자신의 작품인 2층집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보이고 있다. 이진한기자 magnum91@chosun.com | |
결국 12년 전부터 돌 하우스 만들기에 빠졌다. 지금껏 이 인형의 집을 2000여 채나 지어 일본에서 8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97년에는 분야별 일본 최고의 장인(匠人)을 뽑는 TV 도쿄의 ‘TV 챔피언’이란 프로그램에서 ‘돌 하우스 부문’ 1위로 뽑히기도 했다.
‘인형의 집’인 돌 하우스엔 실제론 인형 따위를 꾸며 넣지 않고 빈 집으로 만드는 게 불문율이다. “돌 하우스를 보는 사람들이 자기가 이 집의 주인인 것처럼 상상해 보도록 여백을 남기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정확한 고증과 정교한 스토리를 중시한다. 100년 전 프랑스 파리의 거리 풍경을 만들 땐 당시의 자료들을 모으는 데만 3개월쯤 걸렸다. 그의 돌 하우스들은 들여다보는 순간 특별한 스토리가 읽힌다는 점에서 다른 작가들과 차별된다. 그는 늘 추리소설 쓰는 기분이 되어 ‘어느 시대에 어느 나라에서 무얼 하며 살았던 누구의 집을 짓겠다’고 스토리를 정한 다음 모형을 만든다. 그는 “이렇게 만든 작품은 정교한 모형을 보는 재미와 숨어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를 함께 안긴다”고 말했다.
“특히 돌 하우스에서는 여백이 중요합니다. 예쁘고 화려하게 만들려는 욕심에 이것저것 가득 채우면 상상의 공간이 남지 않아요. 우리 사는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가득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덜어낼 줄도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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