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오두막 주변으로 둘러쌓여 있는 나뭇잎이 싱그럽다. 창문 안으로 네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식사 하는 모습이 비친다. 막내가 우유를 엎지르고 울음보를 터뜨리자 엄마는 잔뜩 화난 얼굴로 막내를 꾸짖는다. 아빠는 울보 막내 아들을 품에 꼭 안고 화가 난 엄마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누나의 장나끼어린 표정이 재미있다.
미니어처로 표현된 단란한 가족의 한 때다. 부엌에 놓여진 싱크대, 식탁 같은 가구는 물론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음식까지 모든 것이 실제와 똑같다. 단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크기가 아주 조그맣다는 것이다. 쏟아버린 우유잔도 아빠가 읽던 도중 급하게 내려놓은 듯한 신문도 모든 것이 1/12로 줄어들어 있다. 내 손 바닥 위에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 '미니어처'에 매료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손 바닥 위의 작은 세상, 미니어처
문희숙(30) 씨는 4년 전 백화점에 들렀다 문화생활강좌 팸플릿에서 우연히 돌하우스 미니어처 사진을 처음 보게 됐다. 길거리에 있는 가로등이며 쓰레기통까지 모든 것을 그대로 재현해 낸 조그마한 세상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인터넷 블로그를 뒤져가며 하나하나 작품을 둘러보던 문씨는 '이 조그만 세상을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에 2004년부터 한국돌하우스작가협회를 찾아 돌하우스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덕분에 아마추어 작가로도 활동하게 된 문씨는 지금 미니어처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중이다.
문씨는 "미니어처는 단순히 실제를 축소해 놓은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집, 내가 꿈꾸고 있는 삶을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라며 "조그마한 점토를 갖고 실제 모습 그대로 재현해 낸다는 것이 굉장히 예민하고 까다로운 작업이긴 하지만 그만큼 완성된 작품을 볼 때면 성취감도 높아진다"고 자랑했다.
미니어처 마니아인 문씨가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는 한국돌하우스작가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돌하우스월드(www.dollhouse.or.kr)'. 회원수만해도 2000~3000명에 가까운 대형 동호회다. '돌하우스월드'뿐 아니다. 한국돌하우스협회에 소속돼 있는 미니어처 아카데미 '푸펜하우스' 역시 2000명이 넘는 동호회원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이 외에도 다음이나 네이버 등에만 10여개의 미니어처 관련 카페가 활동하고 있다.
김효정 한국돌하우스작가협회 대표는 "지난 2005년 500여명에 불과하던 회원 수가 최근 2~3년 사이에 6배 정도 늘어났다"며 "처음에는 그저 귀여워서 호기심을 나타내던 사람들이 요즘에는 직접 미니어처를 제작하기 위해 수업을 듣거나 동영상을 찾아 보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변화를 말한다.
박은혜 푸펜하우스 원장은 미니어처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로 '개인화된 현대인들의 성향'을 꼽는다. 먹는 것, 자는 것 등의 일상생활은 물론 즐기고 표현하는 취미생활까지 개인화되고 있는 요즘에는 특히 다른 누구의 방해도 받지않고 '자기만의 세상을 창작'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수익사업으로 연결시키기 쉽다는 점 또한 많은 사람들이 미니어처를 찾고 있는 또 다른 이유다. 박 원장은 "미니어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대상이다"며 "우리 주변의 익숙한 물건들을 조그맣게 만들어 놓았다는 친숙함이 미니어처를 상품화 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상품화 가능성 무궁무진
미니어처를 상품화 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차려논밥상이다. 차려논밥상은 명함 홀더, 핸드폰 줄 등에 미니어처를 부착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곳으로 음식 미니어처를 전문으로 한다. 온라인 사이트뿐 아니라 쌈짓길 등에도 점포를 운영 중이며 미니어처 분야가 동호회 활동을 기반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만큼 '차려논밥상'이란 동명의 다음 카페도 운영 중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음식 미니어처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희경 대표는 2년 전 취미로 미니어처를 제작하던 동생 정희은 씨와 뜻을 모아 이 회사를 설립했다. 정 대표는 "미니어처 문화가 발달돼 있는 일본을 자주 들르는데 그때마다 일본의 아기자기한 미니어처 상품을 보고 부러웠다"며 "일단은 사이즈가 작고 귀여운데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소품을 응용한 작품이 많아 상품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 많은 미니어처 대상 중에서 음식을 전문으로 택한 것도 상업성을 고려한 결과였다. 정희은 씨는 "미니어처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단지 작고 귀엽다는 것만 매력으로 느끼지는 않는다.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기억을 미니어처에 불어넣어 상품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음식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인만큼 액세서리에 대한 호감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고 설명한다. 외국인에게 가장 많이 팔리는 '비빔밥 미니어처'의 경우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먹어 본 음식이 비빔밥이기 때문에 한번도 맛보지 못한 다른 음식 보다 구매율이 높다는 것이다.
예상이 적중한 것일까. 차려논밥상은 단순한 액세서리 판매뿐 아니라 여러 회사와의 제휴를 통해 많은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교통카드사와 제휴를 맺고 미니어처 카드를 제작,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핸드메이드로 제작된 삼겹살 미니어처에 교통카드 칩을 부착한 제품 10만개가 1년도 채 안 돼 모두 판매됐다.
정 대표는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디자인 상품이기 때문에 보통의 교통 카드보다 고가에 판매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반응이 너무 좋아 우리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김효정 한국돌하우스작가협회 대표는 "미니어처를 상업화한 국내 첫 시도라 할 수 있는 차려논밥상이 높은 성과를 이루고 있는 만큼 미니어처 작가들 사이에서도 앞으로의 시장성에 대해 밝게 전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며 "아직은 미니어처가 마니아층에 국한된 문화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제 막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미니어처 공예의 저변이 확대되기 시작한 만큼 앞으로의 미니어처 산업 역시 희망적"이라고 평가했다.
푸펜하우스 박은혜 원장은 "예쁘고 아기자기한 미니어처는 정서 교육에도 효과가 높아 현재 치료용 미니어처에 대한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며 "차려논밥상과 같은 상업화 시도는 물론 치료용 미니어처 등 여러 분야에서 미니어처를 접목하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미니어처를 응용한 다양한 상품을 만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전망했다.
